카테고리 없음

[책을 펴다] 불행 또한 삶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Lucy7 2024. 1. 7. 01:15

죽음조차 희망을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에 대한 내용의 책으로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살아돌아오게 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저자는 자신이 정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기억으로 남겨두기 힘들었을 거라는 말을 하며

수용소안의 참상을 어느 정도였는지 제목 "죽음의 수용소에서" 안에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저자

저자 빅터 프랭클은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서 폴란드에 오시비엥침에 위치한 아우슈비츠에 포로로 수용된다.

 

전쟁 중에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란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서로가 다른 신념과 사상체계로 인해

적과 아군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삶과 죽음의 대립만을 볼 수 있는 것

 

다른 문화, 생각,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 이토록 무서울 수 있다는 게 같은 믿음을 가진다라는 의미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핵심문장

 

고참 수감자가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된 넥타이핀을 놓고 한 접대반 원과 흥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슈냅스 라는 술을 사는데 썼다.
“즐거운 저녁 한 때"를 위해 필요한 슈냅스를 사는데 몇 천 마르크의 돈이 필요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기수들에게 슈냅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술로 자기 자신을 마취시키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

술, 담배, 커피, 게임 등 소위 중독의 단계에 이르는 모든 것들은 일시적으로 빠르게 기분이 좋아지면서 장기적으로 다시 찾게 만들기 때문에 끊기가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모진 노동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의 마지막 시점에 대한 압박은 그러한 중독되기 쉬운 것을 찾는 것 조차도 인간의 한계와 상황으로 인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한 것 이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이것 혹은 저것이 있으면 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내가 이미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미 정해진 가족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 이외에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은 없다. 단지 하지 않는 것 뿐.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

언제든 죽을 수 있다라면 굳이 자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겠죠? 

말 그대로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 이 생을 즐겁게 살기로 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테니까요

 

 

 

이것은 어른들이나 벌을 받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

피곤하면 쉬면 되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약 먹으면 된다.

(장기간 고통에 놓이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의 예외사항을 제외하면)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지속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고, 사람에게 큰 고통을 주는 건 정신적 고통이다

그걸 현실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게 심리상담과 정신과가 급증하는 이유이다.

(유튜브에서도 심리에 관한 내용이 인기이다)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 중의 하나는 우리 작업반의 카포가 내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막사에서 작업장까지
먼 길을 행진해가는 동안 나는 그의 연애 이야기와 결혼생활의 불화에 얽힌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성격을 진단하고, 그에게 정신 요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나에게 고마워했으며, 그 때문에 나는 그로부터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

SBS NOW [집사부일체] 차은우가 오열한 이유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수 많은 사람들속에 둘러싸여 살지만 더더욱 큰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세상의 잣대에서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편해질 수 없다는 것 이다. 

흔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들어주는 것 "경청" 이라고 하지만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만큼 어려운 것.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 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 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 이다.

 

#

나를 사랑하고,

내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 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

나 대신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도

나 대신 밥을 먹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나 대신 걸어 줄 사람도

나 대신 행복해 할 사람도 없다

고로,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

히틀러가 유대인을 배척했지만, 어느 누구도 히틀러와 같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할 권리는 없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마지막이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 갈 수 있다.

 

#

"나에게 두려움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나는 어떤 두려움도 없다.

나는 인생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아무리 대단하여도 인생은 3만 6천 일의 여정이다.

이 세상에 돈을 벌러 온 것도 아니고, 인생을 즐기러 온 것 이다.

고통스러운 경험도 경험이다. 그러나 똑똑히 보면 별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가 없어야 한다. 

만일 사회가 많은 일을 하도록 기회를 준다면 그것을 즐겨라"

 

한 동안 전 세계에 이슈가 되었던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님의 이야기가 이와 같은 의미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내 관심은 대부분의 동료들과 달랐다. 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시련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갖고 있었던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이 모든 시련,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런 상황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궁극적으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탈출하느냐 마느냐 와 같은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것 이다.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그렇다면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실례로 포로수용소나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자. 내가 어떤 미군에게 들은 말인데 이럴 경우 처음에는 “체념 상태"라고 부르는 행동 패턴이 나타난다고 한다. 강제수용소에서는 체념 상태가 아침 다섯 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물론 밖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도 거부하고, 대신 막사에 남아 똥과 오줌에 절은 짚 더미 위에 누워 있기를 고집하는 행동을 나타난다. 아무것도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경고도 협박도 소용이 없다
그런 다음에 아주 전형적인 행동을 한다 주머니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담배를 꺼낸 다음 그것을 피기 시작하는 것 이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가 앞으로 48시간 안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한다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없어지고 순간적인 쾌락의 추구가 뒤를 잇는 것이다

 

 

사실 마약 문제는 이보다 더 보편적인 집단 현상, 즉 현대 산업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인 실존적 욕구의 좌절에서 나오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 이다.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을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의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쓸모 없게 되었다는 것을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것 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청소년 기관이나 성인 교육기관, 공공 도서관 혹은 이와 비슷한 기관에서 봉사하도록 권유했다. 말하자면 그들이 엄청나게 남아도는 자유 시간을 비록 돈을 받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그렇게 하자마자 경제 상황에 변화가 없고 전과 같이 굶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울증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이 복지 정책에만 의지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듯이 사람이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둘 째는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미는 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무엇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을 성취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것이라는 로고테라피 치료 상의 개념이 정말로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적인 경험의 세계를 희생시키면서 외적인 성취의 세계에만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가치는 언제나 그 사람과 함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사람이 과거에 실현시킨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 사람이 쓸모 있느냐 없느냐 하는 조건에 기반을 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의 가치가 오로지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자행된 안락사, 즉 나이가 들어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해서, 혹은 고통스러운 어떤 장애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이상 쓸모 없게 된 사람들을 죽였던 “자비로운"행위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지 않을 것 이다. 그것을 오로지 개인적인 모순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