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정처없이 길을 떠난 "싯다르타" 그의 다양한 방황속에서 여러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서 결국 나는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늘 똑같은 일들의 반복인 것 같지만 매번 달라지는 순간들, 분명 옳고 그름은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쪽이든 상대가 살아가는 그대로가 그 상대에게는 최상의 정답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책이다.
저자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양면성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작가로,
워낙 고전으로 입소문도 많고 심지어 연예인 분들도 다수 추천할 정도로
작품성이 굉장히 뛰어난 "헤르만 헤세" 이다.
핵심 문장
무엇 때문에, 아무 흠잡을 데 없는 아버지가 날이면 날마다 죄업을 씻어내야만 하며, 날이면 날마다 스스로를 정화시키려 애써야만 하며,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그 일을 새삼스럽게 반복하여야만 하였을까? 아버지의 내면에는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으며,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근원적인 샘물이 흐르지 않는가? 그것을, 그러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자아 속에 있는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 내어야만 하는 것 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탐색하는 것이요, 우회하는 길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데 불과하다. 싯다르타의 생각들은 이러한 것이었으니, 이것이 그의 목마름이었고, 이것이 그의 고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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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방황은 곧 시행착오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죄악시하곤 한다. 방황은 죄악이 아니다.
인간에게 방황이 없다는 것은 나아가려는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며, 그 욕망은 더 나아지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방황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이며 그것을 넘어선 것이 성취다.
박경철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도대체 가르침으로부터, 스승들 한테서 네가 배우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이며, 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던 그들이 도저히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지?] 그리고 그는 찾아냈다. [나는 바로 자아의 의미
와 본질을 배우고자 하였던 것 이다. 나는 바로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려 하였던 것이며, 바로 그 자아를
나는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고, 그것을 단지 기만할 수 있었을 뿐
이고, 그것 으로부터 단지 도망칠 수 있었을 뿐이며, 그것에 맞서지 못하고 단지 몸을 숨길 수 있을 따름이었
다. 진실로,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나의 자아만큼,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수수께끼,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이 되는 별다른 존재라는 이 수수께끼, 내가 싯다르타라고 하는 이 수수께끼만큼 나를 그토록 많은 생
각에 몰두하게 한 거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에 대하여, 싯다르타에 대
하여 가장 적게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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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스스로를 극복하여 훌륭한 스승과 같이 되고자 했지만,
자기 자신도 모른 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싯다르타가 나에게 그토록 낯설고 생판 모르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는 것, 그것은 한 가지 원인, 딱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 이다.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 이다! 아트만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바라문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자아의 가장 내면에 있는 미지의 것에서 모든 껍질들의 핵심인 아트만, 그러니까 생명, 신적인 것, 궁극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나는 나의 자아를 산산조각 부서어버리고 따로따로 껍질을 벗겨내는 짓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나한테서 없어져 버렸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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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단순히 먹는 것도 단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로 단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 듯 나에게 맞는 것은 내 안에서 찾는 것 이지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이다.
몇 해 동안 그는 고향 없이 떠도는 신세였지만 자신이 떠돌이라고 느끼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이제 그걸 느끼게 된 것이다. 속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침잠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아
들이었으며, 높은 신분의 바라문이었으며, 정신적 존재였다. 이제 그는 단지 깨달은 자 싯다르타에 불과
하였으며 더 이상 그 밖의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으며, 한 순간 몸이 얼어붙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누구도 그 만큼 외로운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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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나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는 것 이다.
그래서 홀로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처량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가 나와 있음으로서 행복을 만끽할 수도 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은 드문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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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삶의 가장 큰 가치를 만난 것과 같다.
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그 아이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그 아이를 때리지도 않고, 그 아이에게 명령 하지도 않아요. 당신은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물이 바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사랑이 폭력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칭찬하고 싶을 만큼 당신은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그에게 강요하지 않고 벌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착각이 아닐까요? 당신은 그 아이를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어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날마다 그 아이를 부끄럽게 만들고, 당신은 당신의 호의와 참을성으로 그 아이를 점점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그 아이에게, 오만불손하고 버릇이 잘못 든 그 아이에게, 바나나나 먹고 살아가는 두 늙은이의 오두막에서 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늙은이들이야 쌀밥만 먹어도 별미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그 아이의 생각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 아이의 마음은 늙고 고요한 우리 늙은이들의 마음과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을까요? 이런데도 그 아이가 강요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바주데바가 말하였다. [그 아이를 시내로 데려다 주세요. 그 아이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다 주라는 말입니다. 그곳에는 아직 하인들이 있을 터이니, 그들에게 그 아이를 맡기세요.
그리고 만약 거기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아이에게 스승을 구해다 맡기세요. 가르침을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소년들, 다른 소녀들과 어울리면서 그 아이의 세계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점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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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가 좋은 이유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없이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라서 그런 것 이다.(물론 그렇지 못한 학생도 생각보다 많지만...)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그럼, 아니고 말고, 이 세계는 매순간 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 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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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알아가는 데 어린나이란 결코 없어요
로맹가리 <자기앞의 생>